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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리웠다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평소 실력이 진짜 실력이다. 평소에 놀기만 하다가 갑자기 오두방정 떨며 벼락치기 공부해도 결과는 뻔하다. 학업에는 집중 안하고 시와 그림을 벗 삼아 나홀로 풍류를 즐기다 보니 성적이 뒤죽박죽, 분야별 꼴찌로 들락날락 했다. 그나마 글짓기나 미술실기 대회에서 상타는 일로 겨우 체면 유지는 됐다.   평상시에 잘 놀다가 학기말 시험 전날은 초비상이다. 초치기 분치기로 시험 준비에 몰두한다. 일단 대청마루에 상을 편 뒤 졸릴 걸 대비해 세수 대야에 찬물을 준비한다. 밤샘 할 요량으로 혹여 잠이 들면 어머니께 깨우라고 신신당부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백점 받은 시험지를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진다. 연필에 침을 발라 가며 네모진 공책 칸을 메꾸며 한글을 익히는 동안 소복 입은 어머니는 한석봉 어머니처럼 하얀 가래떡을 써신다. 난리방구통 떨며 시작한 밤샘 공부는 새벽도 안 돼 꼬꾸라지고 어머니는 한쪽 무릎을 꼿꼿이 세운 채로 모시 적삼을 다듬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잠시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대 사랑이 흔들리는 안개 속에 잊혀지는 것처럼 머무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동여맬 수 없다 해도 아름다운 기억들은 사랑의 열매로 꽃을 피운다.   부모나 자식, 형제나 이웃, 애인이나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때를 놓치기 전에 일상의 바쁜 손 멈추고 그립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있을 때 잘할 걸 후회해도 때를 놓치면 소용없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 뼈 아프게 깨달았다. 때를 놓치면 모든 게 물거품이란 걸. 생각만 하고 할 뻔했던 것들은 흘러간 물이고 놓쳐 버린 파랑새다. 놓친 자의 후회는 공허한 메아리로 가슴을 후려친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작은 틈이 생기면 금세 사이가 벌어진다. 죽자 사자 사랑을 불태우던 커플도 헤어질 땐 빙하기의 팽귄처럼 털갈이하며 등을 돌인다.   급하고 먹고 칠칠치 못해서 옷에 음식을 자주 흘린다. 얼룩 지면 얼른 수건에 물 적셔 살살 문지르면 얼룩이 사라진다. 얼룩이 마르면 자국을 지우기 힘들다.   산천은 세월에 묻혀 천천히 변하지만 사람 마음은 작은 말 한마디 흔들리는 눈빛에 일순간 변한다. 때를 놓치면 많은 걸 잃는다. 사랑은 접착제다. 금이 간 도자기는 그대로 두면 언젠가 깨진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다. 대나무 꽃은 잘 피지 않는다. 100년을 지나 꽃이 피기도 한다. 대나무는 줄기가 거의 시들어갈 무렵에 꽃을 피운다. 끝간 데 없는 사랑은 매마른 땅을 대나무 숲을 만든다.   사랑은 기다림으로 바위에 상형 문자를 새긴다. 사랑은 따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믿고 보이는 그대로 사랑하고 내 속에 너를 품는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사자 사랑 그대 사랑 한석봉 어머니

2025-06-03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길 옆의 샛길, 일탈을 꿈꾸며

큰길로 잘 가다가 종종 옆길로 빠진다. 옆길은 큰길 옆으로 난 작은 길이다. 살다 보면 크고 넓은 길보다 좁고 비탈진 길로 들어설 때가 있다. 옆길에서 또 옆길로 빠지면 본래 길로 돌아오기 어렵다.     각본이 없으니 사는 게 맨날 옆길로 새는 기분이다. 마음 먹은대로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옆길이나 샛길로 빠진다. 본래 해야 할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하면 옆길로 샜다고 비유한다. 가야 할 고지가 저만큼 보이는데 슬그머니 돌아서거나 중턱에서 뱅뱅 돌다 하산한다. 용기 없음이 분명한데 들이댈 이유는 백만가지다.     큰길이 아니라도 정겹고 그리운 길이 있다. 마을을 거미줄처럼 엮은 동네의 좁고 아늑한 골목길은 좋아하는 사람과 어깨 스치며 지나갈 수 있어 좋다.     딴 길에서 옆으로 새는데 나보다 더 큰 명수가 있으랴!   내 초등학교 학적부(학교생활기록부)에는 ‘명랑쾌활 하고 솔선수범하며 주변을 돕고 창의력이 뛰어나며’까지는 좋은데 ‘산만하고 놀기 좋아한다’로 끝맺음 해서 어머니 보여드리기 민망했다. 매년 같은 문구로 쓰여있어 담임 선생님이 전 학년 기록을 베껴 쓴 게 아닌가 의심도 한다.     근데 그 기록은 진짜로 맞다. 아직도 나는 시시각각 수 십 가지의 생각이 떠올라 엉뚱한 일 벌이고, 산만하기 그지없고 끼가 넘쳐나 놀기 좋아한다. 사는 게 녹록지 않아 ‘놀기 좋아한다’가 ‘일하기 좋아한다’로 ‘일’이 ‘놀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부모 염색체를 고스란히 물려 받는다. 부모는 애꿎은 자식 닦달하지 말고 자신의 DNA를 원망해야 한다.     성격은 바꿀 수 없지만 성품은 바뀐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부모의 노력과 정성으로 성품은 바꿀 수 있다. 동으로 가라면 서로 달리고, 방랑기를 주체 못하는 딸 위해 어머니는 등잔불 돋우고 한석봉 어머니처럼 밤 새워 떡을 썰었다.         지금도 나는 옆길로 샐 궁리를 한다. 조금 더 다르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찾아 나선다. 길치라서 표지판이 붙은 길도 못 찾는 주제에 안 보이는 길을 찾다보면 캄캄한 숲 속에서 밤새 헤맨다.   이 일하며 저 일 벌이고, 저 일이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을 꿈꾸는 시간은 황홀하다. 사는 게 지루하지 않고 매일이 유쾌하다. 좋게 말하면 창의력 발동이고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 안 가본 길을 걸을 때는 돈 키호테처럼 짜릿한 쾌감을 즐긴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세계 최초 근대소설로 평가된다. 스페인 황금기의 대표적인 문학이자 문학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시골뜨기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는 기사에 대한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점차 상상 속에 빠져들어 스스로 편력 기사라 생각하고 모험을 하는 떠돌이 방랑 기사다. 스스로 ‘돈 키호테 데 라만차’라 칭하며 농부인 산초를 꼬여 하인으로 삼고 모험을 즐기는 환상과 왜곡을 넘나드는 중세식 판타지 소설이다.     세월이 바퀴를 녹슬게 한다. 꽃길인 줄 알았는데 진흙탕에 빠져 허덕이고 인생의 축포는 불꽃놀이로 허공에 재가 되어 흩어진다.     일탈은 신선한 바람이다. 한번 스쳐간 바람은 다시 볼을 쓰다듬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길에서 꼬여진 생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아도, 매듭 자르지 말고 샛길이던 옆길이든 부지런히 가면 길의 끝에 도달한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샛길 일탈 샛길 일탈 맨날 옆길 한석봉 어머니

2024-06-25

[이 아침에] 큰 바위 얼굴의 어머니

우리 애들은 자수성가(?)했다. 영어보다 한국어가 능숙한 어머니 탓에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 때문이다. 유치원 다닐 때는 떡국 모양으로 종이 오려 알파벳 적어 놓고 한석봉 어머니 흉내를 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간당간당 그런대로 숙제를 도와줬는데 그다음부터는 감당이 안 됐다. 애들은 눈치가 백단이다. 외국인(?) 엄마의 영어와 수학 실력을 재빠르게 눈치채고 더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반면에 미술 숙제는 신나게 함께 해치웠다.     화랑을 열고부터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주중에는 사업에 몰두해 내 도움을 아예 포기하고 아이들은 각자도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어미 된 양심에 주말에는 미술관 박물관 관람, 전시회와 뮤지컬 공연을 함께 다녔다. 지식은 나이 들어도 깨우칠 수 있지만 인성교육은 여린 싹부터 물 주고 잘 가꾸어야 올곧게 자란다.     어머니는 청춘에 홀로 되셨다. 아버지가 남긴 토지를 지키기 위해 머슴이나 일꾼보다 몇배나 더 열심히 밭고랑을 매시던 어머니. 오랜 농사일로 어머니 오른손은 휘어졌다. 땅은 자식의 앞날을 지켜줄 담보라서 목숨 걸고 지켜야 했다. ‘우리 희야 대학 갈 때는 땅콩밭 팔아 등록금 대야지’ 하시며 혼자 미소 짓던 어머니! 땅은 어머니의 희망이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었다.     설날이 오면 삼만이 아재가 방앗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가래를 뽑아 지게에 지고 왔다. 뽀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가래떡 냄새를 맡으면 하얀 날개 달린 백설공주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소복 입은 어머니는 샛별이 잠을 깨고 먼동이 틀 때까지 곧은 자세로 앉아 동글납작하게 떡을 써신다. 삐딱하게 몇 줄 썰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찔레꽃 만발한 꽃길 거니는 꿈을 꾼다. 날이 밝으면 아재 손 잡고 하얀 찔레꽃잎처럼 가냘프게 썬 가래떡을 집집마다 돌린다. 형편이 안돼 설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하는 이웃은 “두 봉지 드려라”고 말씀하신다. 한치도 어긋남 없이 가지런히 썬 떡을 보며 동네 아낙들은 “한석봉 엄마가 따로 없네”라고 칭찬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도우려고 하면 “공부해라. 그래야 큰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너새니얼 호손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얼굴을 닮은 아이가 자라 훌륭한 인물이 될거라는 전설을 듣는다. 세월이 흘러 부자와 장군, 정치인과 시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큰 바위 얼굴에 새겨진 사람들이 아니였다. 어느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이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외친다.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사람의 발자취는 큰바위 얼굴에 새겨진 형상을 닮는다.     돌은 시간의 역사를 기록한다. 한 인간의 삶을 세월 속에 담아낸다. 모진 풍파와 시련을 견딘 흔적을 새긴다. 인고의 날들을 이겨낸 어머니의 삶은 그리움의 언덕 너머 큰 바위 얼굴로 굳건히 서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지런히 가래떡 썰던, 손가락마저 휘어진 손으로 어머니는 큰 바위에 글을 새긴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흔들리지 말고, 가지런히 두손 모으고 차근차근 살라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는 큰 바위 얼굴에 주름진 모습이 둥근 달로 떠오른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어머니 바위 큰바위 얼굴 한석봉 어머니 어머니 오른손

2023-01-2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큰 바위 얼굴의 어머니

우리 애들은 자수성가(?)했다. 영어보다 한국어가 능숙한 어머니 탓에 스스로 살길을 찿아나선 때문이다. 유치원 다닐 때는 떡국 모양으로 종이 오려 알파벳 적어 놓고 한석봉 어머니 흉내를 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간당간당 그런대로 숙제를 도와줬는데 그 다음부터는 감당이 안됐다.   애들은 눈치가 백단이다. 외국인(?) 엄마 영어와 수학 실력을 재빠르게 눈치채고 더 이상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반면에 미술 숙제는 신나게 함께 해치웠다. 화랑을 열고부터는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주중에는 사업에 몰두해 내 도움을 아예 포기하고 아이들은 각자도생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어미 된 양심에 주말에는 미술관 박물관 관람, 전시회와 뮤지컬 공연을 함께 다녔다. 지식은 나이 들어도 깨우칠 수 있지만 인성교육은 여린 싹부터 물 주고 잘 가꾸어야 올곧게 자란다.   어머니는 청춘에 홀로 되셨다. 아버지가 남긴 토지를 지키기 위해 머슴이나 일꾼보다 몇배나 더 열심히 밭고랑을 매시던 어머니. 오랜 농삿일로 어머니 오른손은 휘어졌다. 땅은 자식의 앞날을 지켜줄 담보라서 목숨 걸고 지켜야 했다.   ‘우리 희야 대학갈 때는 짐실 땅콩밭 팔아 등록금 대야지’ 하시며 혼자 미소 짓던 어머니! 땅은 어머니의 희망이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였다. 설날이 오면 삼만이 아재가 방앗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가래를 뽑아 지게에 지고 왔다. 뽀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가래떡 냄새를 맡으면 하얀 날개 달린 백설공주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소복 입은 어머니는 새벽별이 잠을 깨고 먼동이 틀 때까지 곧은 자세로 앉아 동글납작하게 떡을 써신다. 삐딱하게 몇 줄 썰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찔레꽃 만발한 꽃길 거니는 꿈을 꾼다.   날이 밝으면 아재 손 잡고 하얀 찔레꽃잎처럼 가냘프게 썬 가래떡을 집집마다 돌린다. 형편이 안돼 설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하는 이웃은 “두 봉지 드려라”고 말씀하신다. 한치도 어긋남 없이 가지런히 썬 떡을 보며 동네 아낙들은 “한석봉 엄마가 따로 없네”라고 칭찬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도우려고 하면 “공부해라. 그래야 큰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너새니얼 호손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얼굴을 닮은 아이가 자라 훌륭한 인물이 될 거라는 전설을 듣는다. 세월이 흘러 부자와 장군, 정치인과 시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큰 바위 얼굴에 새겨진 사람들이 아니였다.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이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외친다.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사람의 발자취는 큰바위 얼굴에 새겨진 형상을 닮는다.   돌은 시간의 역사를 기록한다. 한 인간의 삶을 세월 속에 담아낸다. 모진 풍파와 시련을 견딘 흔적을 새긴다. 인고의 날들을 이겨낸 어머니의 삶은 그리움의 언덕 너머 큰 바위 얼굴로 굳건히 서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지런히 가래떡 썰던, 손가락마저 휘어진 손으로 어머니는 큰 바위에 글을 새긴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흔들리지 말고, 가지런히 두 손 모으고 차근차근 살라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는 큰 바위 얼굴에 주름진 모습이 둥근 달로 떠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어머니 바위 큰바위 얼굴 한석봉 어머니 어머니 오른손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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